샹갈의 스테인드글라스, 빛과 색으로 쓴 유리 성경 (샹갈, 스테인드글라스, 색채예술)

마르크 샹갈(Marc Chagall)은 회화와 판화뿐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통해도 자신만의 신비롭고 서정적인 세계를 펼쳤습니다. 유대교적 상징과 성경 이야기를 담은 그의 유리 작품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빛을 통해 전달되는 신성한 메시지로 기능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샹갈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어떻게 색채, 상징, 빛의 조화로 ‘보이는 기도’가 되었는지 살펴봅니다.

깊은 파랑, 붉은색, 노란색으로 그려진 천사와 별, 비둘기, 인물들이 어우러진 상징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이미지

유리 위에 그려진 신화와 성경

샹갈은 유럽 각지의 예배당, 병원, 유대교 회당 등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프랑스 랭스 대성당, 유엔 본부, 스위스 취리히 병원, 예루살렘 하다사 병원의 12지파 창문 등이 있습니다. 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성경 속 인물과 장면을 직관적 상징으로 재구성하며, 비정형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어, 비둘기, 물고기, 뿔, 손, 별 등의 요소들이 조합되어 하나의 장면을 구성하며, 문자적 해석보다 시적 정서를 강조합니다. 이로 인해 보는 이에게는 단순한 묘사보다도 더 깊은 감정의 울림을 줍니다.

색채로 빛을 그리다

샹갈의 가장 큰 예술적 특징은 색채에 있습니다. 붉은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등이 서로 중첩되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는 자연광과 만나며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는 이를 통해 유리라는 차가운 매체를 ‘빛의 캔버스’로 변화시켰습니다. 샹갈은 “색은 나의 기도”라고 표현할 만큼 색채에 감정을 담았고, 그 색은 공간 전체를 채우며 관람자의 내면에 울림을 줍니다. 유리 조각 하나하나가 회화의 붓 터치처럼 기능하며, 빛과 색이 만나 움직이는 성화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낮과 밤, 날씨에 따라 작품의 인상이 변화하는 것도 샹갈 스테인드글라스의 큰 매력입니다.

회화에서 빛으로 확장된 세계관

샹갈은 회화에서 보여준 서정적 상상력을 유리 작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그는 유대적 상징, 성경의 인물, 러시아 민속 이미지 등을 자유롭게 결합하며 자신만의 상징 체계를 구축했고, 이를 통해 신앙과 인간, 사랑, 고통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회화가 평면에서 정지된 이미지라면, 스테인드글라스는 빛과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살아 있는 시각 예술이 됩니다. 특히 예루살렘의 하다사 병원 창문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주제로 하여, 샹갈의 종교적 정체성과 화합의 메시지를 동시에 담은 대표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샹갈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단순한 종교적 삽화가 아니라, 빛과 색, 상징과 정서가 어우러진 현대의 성화입니다. 그의 작품은 유리를 통해 기도하고, 색으로 말하며, 빛으로 신성을 드러냅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신성함과 인간성의 경계에서 사유하게 만드는 샹갈의 유리 작업은, 그 자체로 빛으로 쓰인 시이자 기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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