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그림이 이해 안 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아이콘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접할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당혹감입니다. 왜 얼굴이 뒤틀려 있고, 왜 사물이 해체되어 있으며, 왜 단순한 선과 도형으로 이루어진 그림이 수십억 원의 가치를 지니는 걸까요? 사실 피카소의 그림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단순히 형태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예술적 전략과 철학적 전환을 이해하지 못해서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피카소의 그림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를 미술사적 관점에서 짚어보겠습니다.

어두운 아틀리에에서 기하학적 큐비즘 초상화를 그리는 파블로 피카소를 묘사한 사실적인 디지털 콜라주 이미지

1.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기 – 재현에서 해체로

고전 회화는 오랫동안 ‘현실을 재현’하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그러나 피카소는 이 전통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나는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을 그린다”고 말하며, 예술이 단지 눈에 보이는 세계의 모방이 아니라, 지각과 인식, 기억과 개념의 표현임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큐비즘(Cubism)은 이 철학의 구체적인 형태입니다. ‘아비뇽의 처녀들’부터 ‘기타를 든 남자’에 이르기까지, 그는 대상을 입체적으로 해체하고 한 화면에 여러 각도의 시점을 동시에 배치했습니다. 이는 ‘한 번에 한 시점으로만 보는 회화’라는 전통적 한계를 깨는 실험이었죠.

즉, 피카소의 그림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하나의 시점에서 본 대상을 알아보려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며, 피카소는 그런 습관 자체를 의심하도록 유도합니다.

2. 감정보다 구조 – 감각의 언어가 아닌 해체의 언어

피카소의 그림은 종종 차갑고 계산적인 인상을 줍니다. 그것은 그가 감정 표현보다는 구조와 개념, 조형 실험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형태는 해체되고, 구도는 비틀리며, 색채는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감각적으로 ‘예쁘다’고 느껴지는 그림을 기대하는 관람자에게 충격을 줍니다.

하지만 이는 의도된 전략이었습니다. 그는 미술을 통해 보는 행위 자체를 질문하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특히 큐비즘은 3차원 세계를 평면에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수학적, 철학적 탐구였으며, 단지 추상적인 ‘장식용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피카소는 미술을 ‘진실의 조각’을 해체하여 재구성하는 시각적 해부 작업으로 보았고, 그래서 그의 그림은 설명되기 전에는 이해가 어렵지만, 맥락을 알게 되면 굉장히 논리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3. 끊임없는 변화 – 한 화가의 다중 정체성

피카소의 또 다른 난해함은 작품 스타일이 끊임없이 바뀐다는 점입니다. 그는 청색시대, 장밋빛 시대, 아프리카 영향기, 입체주의, 신고전주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화풍을 넘나들며 작업했습니다. 한 명의 작가가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런 변화는 피카소의 예술에 대한 탐구정신과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관람자 입장에서는 혼란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작가인지 감이 잡히기도 전에, 또 다른 얼굴의 그림이 등장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 또한 피카소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 중 하나입니다. 그는 예술가는 시대와 함께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고 보았고, 예술을 고정된 틀로 이해하려는 태도 자체에 저항했습니다. 그의 그림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술을 이해하는 방식이 변해야 한다는 선언이기도 한 것입니다.

결국, 피카소의 작품은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니라, 예술의 본질과 구조, 인식 방식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게 당연한 그림, 그것이 바로 피카소의 의도이자 위대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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